나는 누구일까? 내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그것이 바로 나다. 내가 알아야 할 대상이 따로 있거나, 무엇을 더 해야 알거나, 좋은 옷을 입거나, 명상하거나, 욕심을 버려야 아는 것이 아니다.
‘내가 존재하는구나.’ 이 느낌을 불교에서는 ‘공(空)’이라 한다. ‘없다’ 하려니까 지금 이렇게 존재하고 있다. ‘있다’ 하려니까 눈에도 안 보이고 귀에도 안 들린다. 그래서 ‘공’이다. 이것은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니다. 이 ‘공’이 아니면 지금 내가 존재할 수가 없다.
‘내가 존재하는구나.’ 이것이 나의 본래 모습이고 실체이다. 그 위에 육체와 마음이 얹혀서 나라고 여기기 때문에 우린 나를 알지 못한다. 찻잔도, 주전자도, 책도, 벌도, 집도, 자동차도 다 그 위에 덧붙여진 생각이다. 거기에서 우주가 나왔다. 이 우주가 나를 만든 것이 아니고, 내 존재에서 이 우주가 나왔다.
나는 지금 이대로 현존하고 있다. 현존 자체가 나다. 하버드대학을 나오고, 집이 부자이고, 좋은 차를 타고, 똑똑하고 잘 생겼다고 하는 온갖 것들은 다 내가 아니다. 우리는 바깥에 보이는 현상계 모두를 실재로 보고, 온갖 수식이 붙은 이것이 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깨닫지 못한다.
나는 그냥 존재일 뿐이다. 나는 그냥 오직 존재 이대로이다. 이 나를 아는 데는 특별한 지식이나 수행이 필요하지 않다. 지금 존재하는 본질이 그냥 나다. 눈만 감아도 “아, 내가 존재하는구나.” 하는 것을 알 수 있다. 지금 내가 존재한다는 이 느낌을 다른 사람들은 절대로 알지 못한다. 그 존재감은 내가 깊은 잠에 들어도 그대로 있다. 거기에는 걱정, 근심 아무것도 없다. 그것이 본래의 내 모습이다.
깨달음에 대한 환상을 내려야 한다. 지금 존재한다고 알고 있는 이것, 그대로가 깨달음이며 나다. 실체가 아닌 것을 실체로 착각하면 안 된다. 자꾸 무언가 새롭게 얻거나 저 멀리 어딘가에 이르러야 한다는 이런 행위를 그치기만 하면 참나, 참자아를 바로 볼 수 있다. 오롯이 나만 남을 때 보는 자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. 그저 나로 존재한다, 바로 지금 여기.